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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이야기

[풍수지리] 명당 터의 조건 - 배산임수형

by 꿀로거 202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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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많이 있으나
중국 진나라 시대에 기원해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시대는 우리나라에
천문, 역학, 지리학 등이
발전하던 시대였습니다.

고려와 조선 건국에 얽힌
풍수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국가의 기본정책으로
풍수를 활용하기도 했답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배산임수의 최고 명당인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풍수 이야기

한양은 조선왕조의 시작과 함께

도읍지가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

명당터입니다.

 

조선을 개창한 이성계 대왕은

고려를 무너뜨린 역성혁명에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개경이 본원지였던 고려 세력이

부담되었을 것입니다.

벗어나야 했던 것이지요.

 

또한 불교를 숭상한 고려와 달리

조선은 유교를 정치 이념의 바탕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큰 변화를 수용할 방법은

바로 수도의 천도였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 마을도

명당터로 꼽히지만

한양은 배산임수형의 대표적인

풍수 명당터입니다.

안동 하회마을_안동군 홈페이지 사진 참조
양동마을 _ 양동마을 홈페이지 사진 참조

한양이 도읍지로 낙점된 이유

 

최초 도읍지 후보는 한양과 계룡산 일대,

무악(현 신촌지역) 지역이었습니다.

최고의 명당터로 꼽히던 계룡산 일대는

실제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개경에서 너무 멀다는 이유로 반대가 계속되어

결국 1년만에 탈락하고

무악과 한양으로 압축되었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높으 점수를 받은 무악은

천도를 꺼리던 신하들이 중심이 되어

터가 좁다는 이유로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개국 군주의 변함없는 의지로

한양이 낙점되고 공사가 시작되어

조선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한양도 풍수적으로 명당의 조건을 확실히 가진

손꼽히는 배산임수형 명당임엔 틀림없습니다.

 

배산임수의 명당

한양의 풍수 형국은 혈(穴)로 들어오는

기운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입니다.

 

혈과 명당을 좌우에서 에워싸고 있는

 

좌청룡(타락산), 우백호(인왕산)

 

북으로는 주산(백악산), 조산(삼각산)

 

남으로는 안산(남산), 조산(관악산)

 

내수(청계천), 외수(한강)으로 구성됩니다.

 

한양은 내명당과 그를 둘러싼 외명당의

이중구조입니다.

 

경복궁의 자리는 혈(穴)의 자리로서

기가 멈추어 생기가 응집된 

타원형의 땅덩어리입니다.

 

명당자리는 혈 앞에 광화문 일대와

육조거리 쪽의 넓고 평평한 자리로

기가 응집된 곳입니다.

 

명당수는 청계천이며 서쪽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르는 게 길하다고 합니다.

 

청계천 복원시 한강물을 정수해 흘러들게 하면서

물길이 거꾸로 되었으나

원래 기운에는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풍수의 기운은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산의 지형, 산줄기의 흐름으로 그 기운(에너지)을

살피는 것입니다.

 

요즘은 장례방법의 변화와 함께

묘를 쓸 곳이 줄어들고 있어

음택풍수는 조금씩 관심이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대신 살고 있는 집에 기를 잘 통하게 하고

운이 들어오게 하는 양택풍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풍수는 말 그대로 자연의 기를 잘 흐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기본(정리, 비움, 환기, 소통)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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